윌리엄 61일. 출산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 참 순식간에 지나간다. 윌리엄은 어느새 허리와 목에 힘이 생기고 사물에도 관심이 많아지고 옹알이를 하고 있다. 신생아 티는 완전히 벗었다.
The days are long but the years are short.
육아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이랄까. 육아는 규칙적인 일과의 반복이다. 수유하고 아가와 잠깐 놀아주고, 기저귀 갈고, 재우고, 잠을 잔다. 이 패턴이 매.일. 반복된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아찔한 깨달음은 즉흥적으로 뭔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가의 하루에는 즉흥적인 움직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규칙적인 일과가 반복될 뿐.
나는 모유 수유를 한다. 모유 수유를 선택한 데는 큰 이유가 없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울자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유 수유를 시작했고, 초반에는 액상분유도 먹여보고 모유 분유 혼합수유도 했었는데 분유를 준비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모유 수유를 선택한 데는 내 게으름이 한몫했다.
모유 수유는 쉽지 않았다. 나는 사람은 동물이고 출산과 수유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의 섭리처럼 그냥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가가 처음 젖을 물었을 때는 젖꼭지가 아팠고 아가는 내 왼쪽 젖을 아예 물지 못했다. 그래서 37일 정도는 유두보호기를 끼고 수유를 했다. 유두보호기를 끼고라도 수유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불편함이 많았다. 유두보호기를 꺼내서 수유를 시작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잘 붙어있지도 않았고 쓸 때마다 씻어야 했다. 배고픈 아가에게 기다림이란 없기에 그 사이 아가는 울어버렸다. 또 보호기와 가슴 사이로 아가가 열심히 빤 젖이 흘러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아가도 보호기를 통해서 양껏 젖을 못 먹는 것 같았다. 그래서 꼭 하루 두 번 이상은 분유를 줘야 했다.
그 당시 모유 수유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아가를 먹이기는 해야겠고, 아가는 배가 고픈데 보호기는 잘 붙어 있지 않고, 빈 젖을 빨고 있었던 건지 금방 먹였는데 또 배고파 하는 아가에게 급하게 분유를 태워서 줬더니 배부르게 원샷 하는 모습을 보면서 허탈감도 들었다. 또 아가가 보호기를 잘 물 수 있도록 아가가 입을 크게 벌렸을 때 유두보호기 끝이 아가의 입천장에 닿을 수 있도록 아가의 머리를 가슴팍으로 밀어야 했다. 나는 아가에게 미안했다. 입은 아기가 세상을 경험하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하는데 그게 실리콘 세상이라는 게 미안했고, 아가의 머리를 가슴팍으로 밀었을 때 불편할까 봐 미안했다.
초반에 모유 수유가 힘들었음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물론 여전히 분유 타기 귀찮고 분유병 씻기 귀찮은 내 게으름이 한 몫 했지만) 모유 수유를 할 때 나만 볼 수 있었던 아가의 모습 때문이었다.
모유 수유하는 아가의 모습? 윌리엄의 눈동자는 까만데, 배고플 때 윌리엄은 성난 눈썹으로 눈을 크게 뜨고 새카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젖을 빤다. 그 모습은 용맹한 한 마리 햄스터 같다. 배가 고파서 화가 난 듯 그렇게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젖을 빨다가 이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아가가 잠들면 발을 만지든 몸을 흔들든 턱을 만지든 깨워서 다시 젖을 먹게 하는데 그러면 다시 눈을 번쩍 뜨고 젖을 빨다가 또 금방 눈을 스르륵 감는다. 그 모습이 정말 귀엽다.
젖을 다 빨고 배가 부르면 아가는 젖꼭지에서 입을 떼고 고개를 홱 뒤로 젖힌다. 눈은 지그시 감겨있고 입술은 불어있고 입가에 젖이 흥건히 묻어있는 채로 잠이 든다. 혹은 눈을 뜬 채로 젖 먹던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기도 한다. 그러다가 좀 크고 나니 요즘은 젖을 다 빨면 고개를 뒤로 젖히고 턱은 이중턱, 보이지 않는 목, 그 상태에서 양손 기지개를 꼭 한다. 입술은 촉촉하게 젖어있고 입가에는 여전히 젖이 묻어 있다. 가끔 코를 가슴에 파묻고 젖을 빨았는지 코가 빨갛다. 딸기코와 젖으로 불은 입술, 이중턱을 하고 기지개를 켤 때 한 잔 거하게 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또 모유 수유를 할 때 아가의 손짓이 정말 귀엽다. 모유 수유를 할 때 아가는 손을 움직여가며 매우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윌리엄이 신생아 일 때는 손에 장갑을 씌운 상태라서 몰랐는데 신생아 시기가 지나고 손을 내어놓고 수유를 할 때 아가가 젖을 빨 때 손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젖을 빨기 전 손을 먼저 빠는데 이것은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양수를 먹기 전 손으로 얼굴이나 입을 만지는 것과 유사한 행동으로 엄마 뱃속에서 학습한 행동이라고 한다. 손을 빨고 아가가 입을 크게 벌려서 젖을 빨려고 하는데, 이때 아가는 흐린 시력과 손을 이용해서 젖꼭지 위치를 찾는다. 젖을 잘못 물었을 때는 손으로 가슴을 밀어가면서 위치를 조정하려고 한다. 이 작디작은 아가가 가진 기술이 있다니!
아가가 37일 되었을 때 마침내 유두보호기 없이 모유 수유를 할 수 있게 됐다. 정말 그때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 그 후 나는 약간의 자신감을 얻었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모유 수유 시간이 행복해졌다.
나는 10분, 20분 쉬지 않고 젖을 빠는 아가의 모습이 놀랍다. 흐린 시야와 손과 팔을 이용해서 젖꼭지를 찾아서 젖을 물고 손을 움직여가며 젖을 빠는 아가의 능동적인 모습이 놀랍다. 젖을 빠는 일은 아가가 약간의 엄마의 도움을 받고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인데 그 일을 훌륭히 해내고 있는 아가가 자랑스럽다. 내 몸에서 생산하는 젖만 먹고 아가가 자란다는 사실이 놀랍다.
엄마가 아가에게 젖을 먹이고 아가가 엄마 젖을 빠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에게는 놀라운 발견이다. 아가가 젖을 빨면 비워지고 아가가 배고파질 무렵 다시 차오르는 가슴. 모유 수유는 아가와 엄마의 하모니다. 젖을 빨 때 보이는 아가의 능동성과 쉬지 않고 젖을 빠는 파워풀함. 어쩌면 사람은 능동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능동성은 인간 본연의 성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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