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함을 꿈꾸는 시간 (2022년 3월 10일)

아기와나

영원함을 꿈꾸는 시간 (2022년 3월 10일)

아기 침대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가보면 윌리엄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 윌리엄 정수리가 있다. 윌리엄이 혼자 일어나서 사부작 거리며 뒤집기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일어나서 울지도 않고 몸을 뒤집고 노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옆에서 인기척을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자는 척을 하고 곁눈질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요즘 우리 집은 거실 확장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공사에 직접 참여한다고 데이브는 밖에서 열심히 시멘트를 섞고 벽돌을 자른다. 윌리엄을 안고 창문을 가리고 있는 네트를 걷고 창 밖으로 보이는 데이브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기. 아빠 있어. 아빠 보여?" 윌리엄은 창문 너머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뜨고 밖을 바라본다. 윌리엄에게 창 밖이라는 새로운 또 하나의 세상이 열렸다.

최근 윌리엄에게 장기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도리질. 비행기 자세, 푸쉬업에 이어 세찬 도리질을 한다. 윌리엄은 원래 잘 때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잠들어서 아직 뒤통수 가운데 머리가 없다. 그런데 요즘은 혼자 놀 때도 도리도리 한다. 솜방망이 같은 두 발을 명랑하게 흔들며 손에 닿는 물건은 입으로.

이유식을 먹고 밖에 바람을 쐬고 저렇게 바닥에서 잠깐 놀고 나면 어느새 잠잘 시간이다. 아가에게 자는 것은 먹는 것만큼이나 매우 중요한 일과다. 잠든 윌리엄 양팔은 쫙 펼쳐져 있고 오른팔에는 사자가 달린 헝겊 천이, 왼팔에는 극세사 기린 인형이 얹혀 있다. 팔을 다 뻗어도 팔은 겨우 내 한 뼘 길이다. 콧바람을 풍풍거리며 열심히 잔다. 그러다가 입을 여덟 팔자 모양으로 하고 쩝쩝 거리며 젖을 빠는 시늉을 한다.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윌리엄은 하이체어에서 밥을 먹을 때, 바닥에 누워서 옷을 갈아입을 때 양손을 원을 그리듯이 돌린다. 앉히려고 할 때 다리를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세운다. 바닥에 발을 딛는 게 재밌는 모양이다. 그리고 눈코입 달린 인형과 내 시커면 머리카락을 보면서 가글 거리며 웃음 짓는다. 모유를 배부르게 먹고 난 뒤 눈과 입술은 촉촉하게 젖어 있고 머리를 젖히고 취한 듯 흡족한 표정으로 두 손 만세를 한다.

나만 아는 윌리엄의 모습.

콧바람 뿜으며 자는 윌리엄은 체구는 작지만 자는 모습마저 생기 있다. 윌리엄은 날로 생기 있어지고 내 체력은 나날이 고갈되고. 하루 육아의 마지막은 밤잠을 재우는 일인데, 윌리엄이 잠들고 나면 나도 졸린다. 밤에 윌리엄이 자지러지게 운 날에는 주방에 내려가서 오미자 냉침차 한잔 벌컥 마시고 오렌지를 까먹는다. '기운아 솟아라 제발.'

윌리엄을 낳고 육아를 하면서 나는 외로웠다. 가족과 친구가 보고 싶었다. 내가 미처 내 마음을 알기도 전에 지독한 향수병이 찾아왔다. 이 외로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없었다. 데이브와 나 사이 다리는 무너졌고 시댁과 다리는 불탔다. 이제는 단념해야 될 때가 온 듯하다. 내 육아의 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장윤주의 '영원함을 꿈꾼다'라는 노래가 있다. 장윤주가 엄마가 되고 나서 딸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다. 아가 눈에 비친 변해버린 모습, 기쁘지만 눈물이 나고 아가의 미소를 보며 위로받고 지나가는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며 새로운 내가 되기로 다짐한다는 내용의 노래. 슬플 때도 있다.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바람처럼 지나가는 육아의 시간, 내 앞에서 꿈틀거리는 이 귀여운 5등신 아이와 함께라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와 추억을 꽁꽁 싸서 내 마음에 간직하기로 한다. 허전함은 그 추억과 사랑으로 채워질 것이다. 나도 장윤주의 노래처럼 점점 새로운 내가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