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영국에 태풍이 불고 날씨가 춥고 침울했다. 멘탈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나는 어디 갈 곳 하나 없고 만날 사람 하나 없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이런 날씨가 무섭다.
평평하게 펼쳐진 한국 집과는 달리 영국집은 2층, 3층 구조로 평범한 집 기준으로 집 대지 면적은 좁고 위로 올라가는 구조다. 우리 집 거실은 한 면은 창문이 있지만 삼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폐쇄적 구조다. 푸른빛의 밝은 형광등이 방을 밝히는 한국 집과는 달리 영국집 조명은 노란빛 조명이며 조도도 낮다. 우리 집 거실에는 밝기 조정이 가능한 스위치가 있는데 불을 아무리 밝게 해도 눈이 침침하게 느껴진다.
윌리엄은 거실 바닥에서 앞으로 뒤로 뒤집고 양손을 비행기 날개 모양으로 들었다가 푸시업을 하듯이 바닥을 짚고를 반복하며 논다. 아이와 둘이 있을 때 적막함이 싫어서 알렉사로 BBC Radio 2나 Radio 4를 틀어놓는다. 날이 침침하고 추운 날은 어쩐지 혼자 거실 바닥에서 파닥이며 놀고 있는 윌리엄이 안쓰러워 보인다.
6개월이 넘은 윌리엄은 부쩍 호기심이 많아졌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눈을 뜨고 있어도 허공을 바라보는 듯했던 신생아 때 와는 달리 요즘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눈빛은 반짝이고 보이는 사물은 손을 뻗어서 만지고 잡으려고 한다.
점점 활동적이게 움직이는 아이를 좁은 거실에 두고 놀게 하는 게 안쓰러워서 아기띠로 어부바를 해서 집안일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윌리엄은 아기 코알라처럼 등에 업혀서 거울을 볼 때마다 입을 활짝 벌리고 웃고 있다. "너도 매번 같은 것을 보며 누워있기 지겨웠던게지?"
폭풍이 물러나고 비가 쏟아진 뒤 날이 갰다. 윌리엄을 앞에 안고 하루 두세 번씩 나가서 바람을 쐬기로 했다. 바람은 아직 차갑다. 윌리엄이 추울까 봐 스노수트를 입혀서 데려 나가는데 스노수트를 입은 8.5kg가 넘는 윌리엄이 어쩐지 거대하게 느껴진다. 얼굴로 불어오는 찬 바람 때문에 윌리엄이 감기 걸릴까 봐 걱정되기도 하지만 감기가 대수인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거실에서 뱅글뱅글 맴도는 것보다 나가서 빛을 보고 신선한 공기라도 쐬는 게 좋지 않을까.
윌리엄을 안고 걷노라니 만삭일 때가 생각난다. 배가 불러서 지퍼가 겨우 잠기는 후드 점퍼를 입고 매일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지금은 태어났을 때보다 두 배는 더 커진 아이가 내 앞에 있다. "아기와 나".
"윌리엄과 나". 윌리엄과 6개월을 함께 하고서야 이제야 내 마음이 싹을 텄다. 윌리엄이 태어나고 겨우 6개월 반이 지났을 뿐인데 초반 몇 개월이 어떻게 지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앨범을 보면 온통 수유 사진과 자는 윌리엄, 의미 없이 반사적으로 팔다리가 움직이는 윌리엄, 윌리엄 똥 사진뿐이다.
아가의 모든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어느 날 문득 잠투정하는 윌리엄 모습조차 그리울 것 같아서 윌리엄은 베개 위에, 베개는 내 무릎 위에 얹고 낮잠을 재우다가 찡찡거리는 윌리엄의 모습을 녹화했다. 재울 때는 잠들기나 하려나 애 먹느라 미처 보지 못했는데 영상을 다시 봤더니 로봇처럼 움직이는 두 손으로 졸린 눈을 비비면서 잠들려고 애쓰며 우는 너무 순수한 한 아기가 있었다.
이렇게 예쁜에 왜 나는 너에게 가끔 화가 났던걸까. 왜 이제서야 너를 책임감과 의무가 아닌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 걸까? 요즘은 자고 일어난 윌리엄을 살포시 안고 '오... 작고 소중한 내 아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정말이다. 윌리엄은 내게 작고 소중하다. My precious little one. 우리 함께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세상을 보고 느끼자.
'아기와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의 작은 세계로의 초대 (2022년 3월 18일) (1) | 2022.12.18 |
---|---|
영원함을 꿈꾸는 시간 (2022년 3월 10일) (1) | 2022.12.18 |
윌리엄을 재우다가 (2022년 2월 18일) (1) | 2022.12.18 |
윌리엄에게 쓰는 편지 - 잡식 동물이 되다 (2022년 2월 2일) (0) | 2022.12.18 |
영국 Reusable nappy(천기저귀) 사용기 (2022년 1월 28일) (0) | 2022.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