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을 재우다가 (2022년 2월 18일)

아기와나

윌리엄을 재우다가 (2022년 2월 18일)

낮잠 시간을 놓친 아기는 달래기 어렵다. 이제는 커진 몸집만큼 목소리도 커져서 귀가 멍멍해질 듯한 윌리엄의 울음소리에 목이 타들어가고 머리가 멍해진다.

지금 윌리엄을 재우는 걸 포기하면 오늘 밤은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피곤한 아기는 결코 달래지지 않는다. 아기를 피곤한 채로 내버려 둔다면 오늘 밤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두운 방에서 우는 윌리엄을 안고 눈을 질끈 감는다. 눈물이 난다.

옆 동네 사는 루씨를 잠깐 만나고 왔을 뿐이다. 루씨에게는 윌리엄보다 1개월 반 정도 먼저 태어난 딸 케이티가 있다. 원래는 오늘 11시 반에 만나기로 했는데 케이티가 이앓이를 해서 낮잠 시간이 늦춰지는 바람에 오늘 약속은 취소됐었다.

약속을 취소하고 혼자 덩그러니 소파에 앉아 있는데 머리가 멍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남편, 시부모님 외에 타인과 얘기해 본 게 언제지? 이렇게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지내다가 대화 불능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횡설수설 혼잣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또래의 여자 사람 친구와 대화가 고팠다. 루씨에게 연락했다. 루씨에게 루씨가 제안했던 1시 반이 여전히 유효한지 물었다. 급하게 우리의 만남은 성사됐다.

나가기 전만 해도 윌리엄은 자고 일어나서 기분이 좋았는데 루씨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소리를 내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베이비 타임 어플을 보니 마지막으로 수유한지 5시간이 지나있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수유를 미처 못한 것이다. 점점 산만해지는 윌리엄을 달래기 위해서 수유를 시도했다. 윌리엄은 수유에 집중하지 못했다. 점점 요란스러워지는 윌리엄 때문에 루씨와 대화는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케이티도 덩달아 산만해진 탓에 우리는 만난 지 한 시간 반 만에 헤어졌다.

집으로 오는 길 차 안에서 윌리엄은 울기 시작했다. 찡찡거림은 점점 우렁찬 울음으로 바뀌었다. 신경이 곤두섰지만 지나는 곳은 30mph 속도제한 구역으로 윌리엄이 아무리 울어도 차는 세월아 네월아. 라디오에서는 태연하게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차 안은 윌리엄 울음소리와 노랫소리로 가득 찼다.

집에 도착할 무렵 윌리엄은 잠들어 있었다. 침대로 옮겨놓고 방을 나가니 다시 울었다. 아이 하나도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데 둘을 혼자 키우다시피하는 언니는 얼마나 힘들까. 얼마 전 찜찜하게 통화를 끝내서 그런지 언니 생각이 났다.

나는 결혼 전 혼자 육아를 다 하는 언니의 고충을 이해 못 했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나약해 보였다. 직접 육아를 해보니 "잘 하고 있어. 힘내."라는 말만 해줬더라도 힘이 됐을 것 같은데.

한 번은 우리가 늦게 나갔던 적이 있다. 그날 언니는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패딩을 두르고 조카 모유수유를 했다. 나는 그 모습에 당황했다. 지금 내가 엄마가 되어서 생각해 보니 배고픈 아기 배를 채워주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별날 것 없는 일일뿐인데. 언니가 육아로 힘들어할 때 그걸 이해 못 해준 죄책감이 나를 괴롭힌다. 지금 내가 육아로 힘든 건 속 좁게 행동한 내 태도에 대한 벌인가.

저녁에는 윌리엄 목욕을 시켜주고 책을 읽어주고 침대에 눕힌 뒤 방을 나왔다. 조용해서 잠든 건가 했는데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살금살금 방에 들어가서 안아주니 도리어 달랠 수 없을 정도로 울음을 터트렸다. 졸리는데 혼자 잠드는 법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잠들 수 있게 도와줘야 했다.

윌리엄을 안고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이번에는 아무 노래나 불렀다. 트로트가 입에서 나왔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대학교 때 유행했던 노래다. 이 노래만 부르면 생각나는 동기가 있다. 노래를 부르면서 잠시 추억에 잠겼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노래 한 곡을 다 불렀는데 윌리엄은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다음 아무 곡은 민중가요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다음 곡은 질풍가도. 가사가 어쩜 그렇게 주옥같을까. 윌리엄을 안은 채 노래자랑 시간을 가졌다. 힘찬 가사에서 위안을 얻었다. 마음이 힘들 때 다시 찾을 과거라는, 추억이라는 안식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날 밤 윌리엄은 또 자다가깨서 사정없이 울었다. 재울 때보다 더 높은 난이도는 밤에 자다가 깼을 때다. 그때 윌리엄은 인정사정 없다. 이번에는 다 포기하고 모빌을 틀었다. ‘오, 신이시여. 최선을 다할테니 제게 인내심을 조금만 남겨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