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이라는 새싹 (2022년 10월 6일)

아기와나

윌리엄이라는 새싹 (2022년 10월 6일)

'널서리(nursery)' 영국에서 식물, 꽃을 파는 곳도 널서리라고 불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기관도 널서리다.
nurse는 무엇인가를 돌보거나 키우고 기르는 행위를 가르키는 동사이고, 아이들, 식물에게 해당된다.

새삼 널서리라는 단어가 새롭게 다가온다. 여기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식물을 키우는 것이 유사하다는 것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정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식물을 돌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이와 식물은 싹을 틔우고, 여리디 여린 새싹은 물과 자양분을 공급받고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자란다.

윌리엄도 새싹이다. 모든 이가 그러하듯 윌리엄은 윌리엄 고유의 특성을 가진 세상 유일무이한 새싹이다. 윌리엄이 자라서 꽃을 피울지, 꽃을 피운다면 그 꽃은 어떤 색일지, 향일지, 열매를 맺을지, 잎이 무성하고 웅장한 나무로 자랄지, 아기자기한 덤불로 자랄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세상 모든 아기의 인생은 미개척지다.

내가 윌리엄에게 양식을 주고,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윌리엄의 고유함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기본적 케어를 해주면 윌리엄은 스스로 줄기를 뻗고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누구도 모른다. 윌리엄이 어떤 향을 풍기는 사람으로 성장할지.

윌리엄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은 내 육아의 즐거움이다. 또한, 윌리엄과 가까이서 함께 하면서 보고 느끼는 감정은 나만 아는 특별함이기에 특권이기도 하다.

얼마 전 The Montessori Toddler라는 책을 읽었다. 몬테소리 교육법에 관한 책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교육법에 관한 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교육법이 잔뜩 소개된 책을 읽으면 어쩐지 내 시간 전부를 윌리엄을 위해서 써야 할 것 같고, 아이에게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져서다. 육아의 본질은 자연스러움이고, 자연스러움 속에서 아이는 스스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나는 나의 교육으로 윌리엄이 가진 특이성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

책 내용 중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저자의 이상주의 철학이었다. 실제 사례를 소개하기 전에 책 마지막 부분에 저자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했다.

"세계 평화를 가르치려면, 전쟁을 반대하는 전쟁을 치르고자 한다면, 아이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이 그들 본연의 순수함 속에서 자란다면, 우리는 힘들어할 필요도, 실속 없는 결의안을 통과시킬 필요도 없다. 사랑에서 사랑으로, 평화에서 평화로 흐르고, 세계 곳곳은 그 평화와 사랑으로 채워질 것이다."

저자는 세계 평화를 퍼트리는 은밀한 계획에 동참하기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바르게 이해하고 원칙을 적용하는 것. 서로 차이점을 이해하고, 축복하고, 함께 사는 법을 찾고,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인간이니까. 그 출발은 아이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아름답고, 호기심 많고,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을 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책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 마치 어떤 미션을 부여받은 느낌이 들었다. 부모가 된 것이 갑자기 엄청난 미션으로 다가온다. 비장한 사명감마저 느껴진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은 미션이 생긴 것이다. 뿌려놓기만 하면 그냥 자란다는 깻잎마저 죽여버린 내게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도록 돌봐줘야 할 존재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담을 느끼는 것은 육아의 본질이 아니다. 내가 느낀 육아의 본질은 애써서 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 그 자체니까. 스스로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유함을 잃지 않도록 보호해 줘야 되기도 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작은 아이 그대로 존중해 주고, 친절하게 대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과정에서 나는 다만 조력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십 번 속으로 비명을 지르지만 인내와 친절함을 택하게 되고, 힘든 상황은 유머로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 뒤로하고 일단 현재에 집중한다. 나는 원래 상냥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세상 제일의 친절함으로 대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나 또한 같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이 참으로 멋지고 감동적인 여정이 되어가고 있다.

윌리엄이 13개월 26일 되던 날 쓰는 나의 일기